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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그리고 도서관 (안지선)
사무처
2009.07.04.
2003
 

책과 나 그리고 도서관


                                                                           안지선(서울영락고등학교 1학년)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편한 존재고 사람보다도 반가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책도 많이 읽어주고 책을 많이 사주는 책 읽는 환경 속에서 자라서인지 몰라도 책은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책은 나를 몸과 정신으로 쪼갰을 때 몸통이 아닌 정신적인 부분의 99.9% 순도를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책속의 지식들을 마구잡이로 삼켜버리기 시작했고 책을 하나하나 삼켜버리는 즐거움에 심취해 초등학교 때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고 책만 읽어댔다.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들 중에 상당수는 책을 통해 접해봤던 것들이라 초등학교 때 교과서는 열어보지도 않고 시험을 봐도 반에서1,2 등을 할 정도로 책은 나의 어릴 적 지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책은 나의 지식의 출처이자 친구들보다도 우선시 되는 존재였다. 쉬는 시간에도 친구보다는 책을 봤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는 별로 없었다. 사실 중학교 올라와서도 시험 전날만 공부하면 성적이 꽤나 잘 나왔다.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이해력이 강해지고 교과서 읽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책이 내 지식의 출처였다면 지금은 뭐라고 딱히 명명할 만한 게 없지만 작가의 머릿속을 헤집어 보는 기구 정도로 비유할 수 있겠다. 나는 점점 더 교육적인 책보다는 상상력을 주는 책들 쪽으로 손이 가게 됐는데 그건 동심이 사라져가면서 상상력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본능적인 방어에 가까운 것 같다고 요즘 생각한다. 작가들의 상상력을 조금씩 맛보는 것의 즐거움은 정말 두근두근한 일이다. 내가 그들의 상상력을 훔쳐본다고 화를 내는 작가는 아직까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혹시나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내 동심이 사라져가기 시작 했을 때 어른 되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그냥 콱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세상이 너무나 각박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죽음 말고도 세상을 회피할 구멍이 되어주었다. 책을 볼 때만큼은 그 속에 있는 상상력이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세계들은 정말 즐거웠다. 책은 또 말했다. 힘들 때는 책을 보고 위안을 얻고 각박한 세상을 직접 바꿔 버리라고. 그러면 안 죽어버려도 된다고 그랬다. 그래서 지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난 그렇게 책으로 내 마음속 빈자리를 채운다. 그러니까 책은 나의 땜방인 것이다. 어릴 때는 지식을 채우고 요즘은 상상력을 채우니 말이다. 또 초등학교 때 친구가 별로 없었어도 많은 부분 책이 친구를 대신할 정도로 책은 엄청 큰 땜방인가 보다. 그 땜방들은 그냥 땜방이 아니라 더 단단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들이어서 다른 것들로 마음이 찼을 때보다도 더 단단하게 날 잡아주는 것들이다. 이렇게 나를 채워주고 있는 책과의 인연은 도서관을 만나면서부터 더 깊어졌다.


  사실 도서관은 내 구역이다. 중학교 내내 어슬렁거리면서 책에다 내 손도장을 찍어 놓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사람은 책이 많이 있는 걸 보고 숨이 막혀버릴 것 같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책이 없으면 숨통이 막히고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숨쉬기가 편하고 찌릿찌릿 두근두근하다. 사서선생님은 도서관이 내 놀이터였다고 한다. 놀이터, 도서관은 진짜 내 놀이터였다. 뭐든지 할 수 있고 사람도 만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책은 그리고 도서관은 내 마음에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도서관과 책으로 만들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를 입학할 때, 나는 내가 집과 더 가까운 봉원중학교를 갈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관악중학교에 가게 되어 학교가 멀다고 처음에는 불평을 많이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 관악중학교가 아니었으면 큰일 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올라온 후 반에 친구들이 생겨서 많이 떠들었다. 그 중에 한 친구와 처음으로 도서관에 간 날 나는 깜짝 놀랐었다. 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었다. 거기다가 도서관이 너무 예뻤다. 초등학교 도서관은 책은 있지만 애들이 없는 그런 조용한 공간이었다. 거기다가 죄다 교육적이 책만 가득 했던 지루한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악중학교 도서관 ‘지혜의 샘’은 누구나 찾는 그런 가깝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그 때의 사서선생님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 송경영 선생님을 봤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선생님이 도서관을 맡지 않았었나 싶지만 나를 가르치지 않아 그때는 그 선생님이 송경영 선생님인지 잘 몰랐었다.

  하지만 관악중학교 도서관에도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4월쯤인가 사서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책을 서서 읽지 못하게 하고 책 빌릴 사람이 아니면 쫒아내고 친구와 책을 같이 읽으면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얼굴에 매일 주름을 잡고 계시는 아주 무서운 분이었다. 공포정치에 못 이겨 나는 한동안 도서관을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때 도서관을 같이 갔었던 친구가 사서선생님이 바뀌었다고 했다.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갔다. 차마 무서울 것 같아서 바로 사서선생님께 인사하지는 못하고 친구와 책을 하나씩 빌렸는데 선생님이 ‘이 책은 잘 들어오지 않는데 운이 참 좋네.’하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 때서야 알았다. 사실 사서선생님은 무서운 게 아니라 도서관을 더 찾게 하는 존재라는 걸 말이다. 그 뒤 나는 집에 있는 책보다 도서관 책을 더 읽게 되었다.

  나는 도서관이 너무 좋아져서 도서관에 더 있을 수 있는 궁리를 하다 도서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도서부를 해볼까 하고 보니 도서부는 따로 신청해 마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벼르고 있다가 2학년에 올라와서 도서부를 하게 되었다. 그 때 친구들도 몇 명 도서부에 같이 들어서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점심, 쉬는 시간에 와서 책 정리를 하는 게 도서부의 일이었다. 나는 원래 점심에 도서실에 숙제가 없으면 항상 내려오는 습관이 있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책 정리보다 더 흥미로웠던 건 새 책을 맞는 일이었다. 도장 찍고 스티커 붙이는 일이라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내가 신청했던 책도 찾아보고 새 책을 먼저 만진다는 것, 그건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거기다 사서선생님하고 오래 있다 보니 친분이 쌓여서 가끔 연체된 것을 선생님이 없애주시기도 했다. 흐흐.

  

  도서관과 책은 나의 사람 보는 기준을 바꾸어 주었다. 내가 도서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 읽는 사람은 착한 사람, 도서관 오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머릿속에서 생겨나 버렸다. 인생에 있어 언제라도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가 세 명 있으면 잘 산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사랑하고, 어디를 가거나 부탁을 할 때면 항상 같이 가고 와주는 친구를 세 명도 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어린(?) 나이에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묘한 공식을 앞으로도 써보려 한다.

  도서부를 하면서 또 나는 방과 후에 ‘독서체험활동 반’이라는 사서선생님이 진행하는 방과후학교도 했는데 거기서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좋은 책들을 읽고 글을 썼다. 나와 지현이(쌍둥이 언니)는 글을 참 못 써서 항상 남아서 쓰고 갈 정도였다. 짧게라도 써버리고 읽어보면 도대체가 생각했던 대로 글이 안 써져 있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쓴 게 꽤나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글 쓰는 수행평가 때마다 막힘없이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독서체험활동반을 하면서 나는 ‘학도넷’이라는 인생에 있어 엄청 중요한 단체를 알게 됐다.

  학도넷은 ‘만남과 바람’이라는 하루 동안 가는 독서·문화 기행을 주관하는,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라는 학교도서관을 살리는 운동을 하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다. 우리 독서반은 외부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만남과 바람’을 항상 갔다. 특히 우리 엄마는 우리가 간다고 말만 하면 우리보다 더 좋아하며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 많은 걸 얻었다. 항상 적자가 난다면서도 먹을 것만은 배 터지게 준비해 주시는, 학도넷 운영위원이자 우리 학교 선생님이신 백화현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항상 재미있고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수행평가들만 주셨다. 덕분에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이 아닌 우리 반도 재미있는 활동들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2학년은 지나가고 3학년이 되었다. 2학년 때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나는 3학년이 되어 도서부장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한 애라서 2학년 애들하고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작은 걱정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책이 좋아서 온 도서부는 착한 애들이라서 나를 잘 이해해주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새로 사귄 친구들도 도서부에 들어오면서 도서부는 더 시끄러워졌다. 항상 학교가 끝나면 기본 4시까지 책 정리도 하지만 떠들면서 즐겁게 보냈다. 가끔 그렇게 놀다 보면 사서선생님은 사탕을 하나씩 주셨다. 도서관을 나서며 입에 무는 사탕의 맛은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맛이었다.

  나의 학도넷 사랑은 3학년이 돼서도 계속 이어졌다. 언제나 ‘만남과 바람’ 한다고만 하면 친구들을 모아서 빨리 신청하라고 말하고 급할 때는 도서관 컴퓨터로 신청 해버린 다음에 엄마한테 말하기도 했다. 3학년 때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 백화현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날도 이 날이다 보니 더욱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가 회포를 풀곤 한다. 다행히 엄마는 항상 내가 가는 걸 허락해 주셨다. 나는 학도넷을 따라다니면서 평소에 안 먹던 조개류의 올갱이국이나 우렁쌈밥도 맛있게 먹었다. 또 평소에는 말도 잘 못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소개도 큰 소리로 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만남과 바람’에 온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또 거기에 오는 어린 초등학생들 중에는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도 있고, 항상 가기 전에는 그 아이가 이번에 혹시 오면 좋겠다고 행운을 바라기도 한다.

  ‘만남과 바람’, 학도넷,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 전에 왔는데 또 온 사람을 보면 서로 아는 체를 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뿌듯함과 반가움을 느낀다. 그렇게 왔었던 분들이 다시 와도 반갑지만 이번에는 어떤 분들이 올까 궁금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에는 지하철을 타고 ‘만남과 바람’ 약속 장소에 가면 어떤 사람이 학도넷과 가는지 감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학도넷은 나의 동물적 직감을 깨우쳐주었다. 어쩌면 학도넷을 아는 사람에게서는 책냄새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며칠 전부터 학도넷에서 만나자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도서관과 ‘만남과 바람’을 통해서 선생님도 만나고 놀러 가는 걸 대신했었으니까. 지금은 그 친구들이 기억을 하나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나는 앞으로도 도서관을 사랑했던 나의 친구들과 학도넷을 통해서 작은 모임을 가지고 싶다. 나이 더 먹어서도 항상 학도넷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한다. 각자의 자리에 서서 학도넷을 통해... 생각만 해도 너무 뿌듯하다.

  나는 앞으로도 책을 읽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게 결국엔 나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세상을 바꾸어 버리겠다는 포부를 심어준 것도 책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또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것도 책이었다. 난 집을 지을 때도 내 서재를 제일 크게 짓고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책을 보라고 말해줄 거다. 왜냐면 책은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커서 내 주장을 펼 수 있을 때 나는 도서관을 짓자고 말하고 싶다. 또 나는 책을 쓰고 싶다. 내가 바뀐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다. 물론 이 글을 읽고 말도 안 된다고, 이렇게 글을 못 쓰는데 책 쓰면 사람들이 읽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98.27% 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쓸 거다. 책을 내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글을 쓸 거다. 살다가 책을 정말로 못 쓰겠으면 그 때 나는 책을 쓸 수 있는, 책을 써서 세상을 바꾸어줄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책은 세상을 꼭 바꾸어 줄 것이라고. 그리고 바란다. 세상이 따뜻하고 착한 곳으로 바뀌어나가기를.

 

                                                                           (학도넷 창립5주년 심포지움 원고)

Alles  12/09/18 07:59  삭제
I bow down humbly in the prseence of such great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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