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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준 학교도서관 (김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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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4.
2313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준 학교도서관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1학년 김문기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어느새 봄이 묻어난다. 따스한 햇살 아래 나뭇가지에 움트는 새싹들이 유달리 반가운 것은 대학생활을 펼쳐나간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기 때문일까.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에겐 넓은 캠퍼스에서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강의 중간에 여유가 날 때면 교내 곳곳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며 익히는 것. 그러다 늘 향하는 장소가 바로 중앙도서관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을 꼽으라면 별 망설임 없이 대학도서관을 들겠다. 많은 학생들이 그저 리포트에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에나 도서관을 이용하지만, 내게는 이곳이 편안한 쉼터이자 또 다른 배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학업은 단순히 강의실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관련 서적으로 이어질 때에 진정한 깊이가 드러난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관심 가는 책을 언제든지 손쉽게 집어들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즐거운 특권이 아닌가. 이렇듯 이제 200만여 권에 달하는 장서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난우초등학교의 조그마한 도서관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내가 처음 만난 도서관, 나누리도서관

어릴 적부터 내가 받은 생일․어린이날․크리스마스 선물 1순위는 언제나 책이었다. 부모님은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책만큼은 아낌없이 제공해주셨고, 그렇게 하나둘 쌓인 수백 권의 책이 방안 곳곳에 가득한 모습은 우리 집의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워낙 책읽기를 즐겼던 내 독서량을 충족시키는 데에는 그러나 한계가 많았다. 사교육 없이 자라면서 여유 시간이 많았던 덕분에,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전부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통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변에 이용가능한 공공도서관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걸어갈 만한 거리 내에는 변변한 대형서점도 마땅치 않았고, 동네서점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다가 눈칫밥을 얻어먹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에 도서관이 생길 계획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독서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는 사서도우미에 자원하셨다. 책 선정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어머니가 바삐 학교를 오가며 준비를 돕는 동안 나는 개관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얼마 후 학교 도서관은 드디어 ‘나누리도서관’이라는 예쁜 이름과 함께 문을 열었다. 1999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 도서관 터줏대감 노릇하기

긴 기다림 끝에 처음 만난 도서관의 모습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산뜻한 분위기, 편안한 독서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양질의 도서로 엄선한 수천 권의 책들. 새로 생긴 도서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학교도서관으로 달려갔고, 방과 후 내내 시간을 보낸 뒤 집에서 읽을 책을 빌려오는 것은 곧 일상이 되었다.

어린 시기일수록 거리낌 없이 다양한 정보를 흡수한다는 말처럼 그 시절의 나 역시 새로운 배움에의 즐거움 속에 전 분야의 도서를 섭렵해나갔다. 나중에는 무슨 책이든 제목만 들으면 어디에 있는지 척척 찾아낼 정도였으니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구비된 대부분의 장서를 읽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수년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보내는 동안 다양한 지식을 쌓았음은 물론이고, 논리적 사고나 상상력과 감수성 등 ‘나’라는 한 사람의 기틀은 바로 이곳 도서관에서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에게도 학교도서관은 아들의 배움터 그 이상의 뜻 깊은 공간이었다. 당시 난우초등학교 나누리도서관의 운영은 뜻있는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모여 이루어졌다. 꾸준히 그 일원으로 함께했던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신다. 친구들이 책 읽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는 책장 넘어가는 소리”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사서도우미 활동은 참 보람된 일이었던 모양이다. 머지않은 훗날 작은 도서관을 열어 동네 아이들이 자유로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는 어머니의 소박한 소망에서 나누리도서관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도서관이 열어준 세상

정규 수업이 없는 방학 중에도 초등학교 도서관은 언제나 학생들을 위해 열려있었다. 아니 사실 나누리도서관의 진정한 가치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방학 기간에 드러나곤 했다. 도서관이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굿네이버스’와 ‘어린이어깨동무’라는 두 구호단체의 회원으로 있는 내가 이러한 활동에 눈을 뜬 것도 나누리도서관의 시민단체 연계 프로그램 덕분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단체 ‘어린이어깨동무’와는 8년 넘게 깊은 인연을 맺어왔고, 중학생 때는 어린이 대표단으로 평양에 방문하기도 했다. 넓은 시각에서 본다면 이웃들을 위한 일종의 책임의식과 봉사의지를 가지게 된 것 역시 도서관 프로그램이 일종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밖에도 친구들 사이에 무척 호응이 좋았던 박물관학교과 대공원 곤충 교실, 도서관이 북적거렸던 ‘좋은 영화’ 상영 등 도서관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각종 체험 학습과 문화행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들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책에 별 흥미가 없던 친구들까지 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기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영화 <시스터액트>는 설교와 자기반성의 닫힌 공간이었던 한 성당이 지역사회의 발전을 꾀하고 사랑을 전하는 곳으로 변모하여 화제가 되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돌이켜보면 나누리도서관이 모든 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특별한 장소였던 것도, 단순히 책을 갖추어두는 수동적 역할을 넘어 아이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능동적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학교 도서반 활동이야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동시에 한 단계 높은 학교도서관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새롭지만 다소 낯선 환경이었던 중학교에 금방 적응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생각해보면 도서관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당시 남강중학교 도서관은 점심시간 및 방과 후 대출/반납 전산처리부터 서가정리와 대출증 발급, 신간도서 작업, 청소까지 거의 모든 업무를 클럽활동 도서부 학생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가입한 도서부에서의 활동은 내게 학교 다니는 큰 즐거움 중 하나였고, 당번일 때는 물론 틈나는 대로 자리를 지키며 꽤나 꾸준히 활동했던 기억이 있다. 3학년 때는 도서반장까지 맡아 상주하다시피 했으니 이용자인 동시에 운영주체가 되었던 셈이다.

도서관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혜택을 누리는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책 한 권 한 권마다 왠지 모를 애정이 붙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름대로 바쁜 시기였지만 중학교에서 나의 독서는 그 덕분에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도서반 활동 이야기

3년간의 중학교생활을 마치고 진학한 곳은 서울과학고등학교였다. 역시 고등학교답지 않게 수준 높은 책과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에서 학생들 대부분은 독서할 시간적 여유도 심적 여유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도서관을 꾸준히 드나든 몇몇 소수는 그만큼 책 읽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규모가 작은 학교 특성상 도서반 등 각종 동아리를 통해 그런 친구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화가 잘 통하다 보니 서로 가까워지는 것은 금방이었고, 어울려 다니는 무리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것 같다. 이후 내가 간직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추억 대부분은 그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소중한 나날들이다.

각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멀리 흩어진 지금도 우리는 매일같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절친한 사이로 남았다. 내게 이 친구들의 의미는 단순히 고등학교 시절을 공유한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불과 몇 분 떠드는 사이에 수십 개의 주제가 오가고, 그 어떤 질문을 던져도 누군가는 알고 있을 만큼 풍부한 상식과 관심사가 모여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모두가 장차 성공하리라 확신할 수 있는 이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리곤 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어릴 적 나누리도서관 입구에 붙어있던 포스터의 글귀다. 내가 별다른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길을 이끌어주는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학교도서관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수많은 책들을 나 스스로 펼쳐들며 즐길 수 있었을까.

대학 새내기. 인생에서의 한 단계를 넘어섰다는 의미이기에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라는 말 역시 깊이 새겨두고 있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방향을 밝혀줄 또 다른 책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대학도서관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학도넷 창립5주년 심포지움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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