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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버들눈 도서관 을 다녀와서
장한솔
2010.11.11.
1842

2010111100272130.hwp

<2010. 7. 31>

순천과 벌교와 고창과 함께 한 3박 4일의 이야기

장한솔(남강고 2학년)

첫째 날 - 그렇게 우리는 자연의 품속으로

2기의 첫 여행의 막이 올라갔다, 라고 해도 집을 가장 좋아하는 나한테는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시작되었다. 나는 집에게 “이렇게 헤어져도 가던 길 끝에서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하고 인사를 하며 용산역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무궁화호를 탄 우리 일행,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소년들과 한 분의 선생님은 이것저것 하면서 5시간을 보낸 후에야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인 순천에 도착하였다. 맨 먼저 순천에서 우리를 반겨준 건 다름 아니라 살을 태우는 극도의 폭염이었다. 기차 안에서의 시원함을 만끽한 우리를 아니꼽게 보았던지 온 몸 구석구석으로 번져나가는 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우리는 일행 중 한 명인 기경님의 부모님이 마중 나오셨다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서 기경님의 아버지의 차를 타고 순천에 왔으면 꼭 한 번 먹어봐야한다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꼬막을 먹고 난 후 우리는 숙소로 갔다.

그 곳에서 에어컨과 놀 수 있었던 것도 잠시, 다시 차를 타고 나간 우리는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고려 시절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낙안읍성은 이제는 관광지로 변했지만 성 안에 들어서서 둘러보자 왠지 그 곳에 깃들어 있는 고려의 기운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읍성에도 도서관이 있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지방의 관광지에도 도서관을 세울 정도로 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뻐졌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순천생태공원이었다. 갈대밭, 강물, 그리고 게와 함께 길을 걷는 그 시간은 평화롭고 조용해서... 대체 이 길이 얼마나 더 걸어야 끝날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분명 우리는 일몰을 보러 왔건만 해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올라가시는 부모님들을 따라 걷다보니 눈에 저 넓은 대지와 바다와 하늘이 들어왔다. 비록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인간 세상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밤의 여신 닉스가 밤의 커튼으로 세상을 천천히 덮어버리는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 먼 길을 올라온 게 헛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내려오는 길에서 생각해보니 정말 다시 오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 장소였다.

밖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우리는 ‘책으로 크는 아이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일 갈 태백산맥 문학관의 주인공, 조정래 선생님과 일제 강점기 때를 배경으로 한 <아리랑>,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태백산맥>, 군부 독재 시대를 보여준 <한강>에 대한 발표를 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태백산맥>에 대한 발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태백산맥>의 발단사건이라 할 수 있는 여순반란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여순반란사건이란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국방군 제14연대 좌익계열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도 4·3사건 진압출동을 거부하고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저지하려고 무장봉기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제주도민에 대한 부정착취와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을 촉구하다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인 제주도 4·3사건과 함께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건이라고 한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및 기경님 말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사상이란 건 잘 모르지만 그런 추상적 개념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이 세계가 언제쯤 상냥한 세계가 될까, 하고 생각하는 바였다.

둘째 날 - 튼튼한 현자와 무모한 꼬마 전사를 만난 날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내 옆에는 “여행도 왔는데 밤새 놀자!”라고 말했으면서 어제의 행군에 지쳐 쓰러진 친구들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걸었던 것도 서울에 살면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씻고 나오자 하나 둘씩 일어나 씻고 밥 먹고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을 향해 나아갔다.

태백산맥 투어는 매우 열정적이시고 튼튼하신 김희숙 가이드 분과 합류해 문학관 바로 바깥에서부터 시작하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이 어째서 언덕의 끝이 아닌 중간을 깎아 마치 숨어 있듯이 지어지게된 것일까?”라는 가이드 분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다. 이어지는 가이드 분의 대답은 “이것이야말로 <태백산맥>의 시대와 연관이 있는데 숨어있을 수밖에 없던 빨치산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문학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집필 당시 쓰셨던 만년필, 옷, 원고지 등등 여러 자료들이 많이 있었다. 가이드분이 이것저것 설명해주시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인지 한 가족이 우리와 동행하기 시작했다. 한순간 무전취식 당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내 넓은 아량에는 창해일속이라서 곧 평소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기서 깜짝 퀴즈가 나왔는데 ‘과연 태백산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에 대한 것이었다. 애들은 다들 김범우가 아닐까 했지만 그처럼 중립적인 인물을 조정래 선생님께서 주인공으로 내세울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나의 기억 속을 뒤졌다. 분명 1기모임 여행 때도 그런 비슷한 질문이 나왔었기에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바로 정하섭!! 이었지만 가이드 분 입에서 나온 이름은 하대치였다. 아... 생각해보니 정하섭은 소화와 함께 가장 이어주고 싶은 커플로 이야기를 했었다. 다행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기에 외면적 부끄러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내면적 부끄러움은 내 안을 가득 채웠고 이러다 언젠가 나도 참회록을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하대치일까. 그것은 또 작가가 살던 시대상과 관련이 있는데 반공주의가 철저했던 당시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앞세우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간 반공 죄로 끌려가기 딱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사상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빨치산으로 가야했던 일반 농부, 하대치를 내세워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 우리는 2층을 둘러보고 현 부자네 집, 김범우의 집, 중도방죽 등을 들리고 홍교, 철교, 소화다리로 갔다. 이 중 보물 304호, 홍교는 뒤의 두 다리와는 달리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가 지은 다리이며 우리나라에서 용머리가 3개나 달린 유일한 다리로 주민들이 환갑잔치를 해줄 정도로 벌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리라고 한다. 이 다리를 보면서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차가운 철로 된 다리만 놓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홍교와도 같은 따뜻하면서도 정겨운 다리로 연결되는 관계가 생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태백산맥 투어를 하면서 우리가 매우 지쳐 보이는 걸 느끼셨는지 우리의 튼튼하신 현자님께서는 “아직 남은 곳은 많지만...”이란 아쉬움을 표현하시면서도 투어를 끝마치셨다. 이 무더운 헬리오스의 마차 아래에서도 자신이 가진 정보와 자부심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했던 그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아 속으로 말했다. ‘계절이 돌고 돌아 이번에는 눈꽃바람이 부는 날에, 떠났음에도 떠나지 않은 듯 다시 만나 서로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이제 드디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자 여행을 온 가장 큰 이유가 있는 고창을 향해 출발했다. 순천에서 고창까지 단번에 가는 버스가 없기에 순천->광주->고창 루트를 탄 우리는 어제 다 못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순천의 황혼을 등졌다.

장장 3시간 가량을 버스에서 보낸 우리는 드디어 고창에 도착했다. 우리는 기다리고 계시던 이대건 선생님의 차를 타고 옛 나성분교를 향해 가는데 마치 1기 여행 때의 기억이나 되살리라는 듯 짐칸에 꾸역꾸역 우리를 밀어 넣으시는 선생님들은 이미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짐짝처럼 밀어 넣어져 간 곳은 바로 학교. 그렇다, 우리는 이 죽은 대지와 폐교를 생명과 활기로 가득 찬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된 학생 용병이었다. 하지만 밤이 깊은 관계로 일은 내일부터, 그렇기에 우리는 씻으러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난 두 명의 아이들, 이대건 선생님의 사랑의 결실인 우현이와 다칠이(본명은 다경이라는데 분명 아이는 자기 입으로 이렇게 소개했다!)에 의해 우리의 평화는 깨어져나갔다. 우리가 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러는 건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발길질을 날리는 꼬마는 책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경험해보니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어른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렇게 두 아이의 발차기를 피하면서 샤워한 보람도 없이 다시 땀에 흠뻑 젖은 우리는 또 다시 밤에 놀자는 이야기도 못 한 채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셋째 날 - 모기군단과의 전투 끝에 드디어 이곳에도 생명의 숨결이

일어난 우리들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교실 청소와 매트 닦기. 매트 닦기는 기경님과 하민이에게 맡기고 나, 동한이, 동근이는 학교 안으로 향했다. 그 곳은 모기와 먼지의 소굴이었다. 7년 묵은 먼지와 고전 분투하는 동안 우리를 공격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모기군단이었다. 방사형의 치밀한 조직을 갖추고 우리를 점점 옭매는 그들에게 처음에는 반항도 해보았지만 남은 건 빨간 자국들뿐. 그렇기에 아예 몸을 맡겨버리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빗자루, 물걸레, 청소기 등을 동원하여 땀을 흘리다 보니 교실이 먼지 구덩이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그 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들긴 했지만 이렇게 우리가 피땀 흘리며 갈고 닦은 곳들(??)이 도서관으로 쓰일 것을 생각하며 성취감을 느끼려던 찰라, 이 곳은 오후에 도착할 학도넷 사람들의 숙소로 쓰일 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기운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하던 것은 마저 해야 하는 법. 교실 3곳을 모두 쓸고 닦고 정리한 후(다행히 한 곳은 도서관으로 쓰인다 했다!!) 방에 돌아와 잠시 쉬던 중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밖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 했다. 학도넷 사람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도 조금 편해지겠구나 싶었을 때, 방 빼라는 선생님들의 소리. 이번에 오신 선생님들을 위해 방을 빼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토사구팽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힘없는 우리가 어쩌겠는가. 마치 보습 댈 땅을 잃어버린 농민들과도 같은 우리의 뒷모양은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그 곳으로 가자 ‘이 곳은 우리가 치운 곳이다!’란 생각과 함께 이상한 특권의식이 발휘되어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의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무법자처럼 행동하였다(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다). 때마침 비도 오고해서 준비했던 일 같은 것도 흐지부지 되었기에 그런 ‘너희가 한 게 뭐가 있냐?’라는 생각이 더욱 강화되면서 더욱더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분명 이렇다 할 뚜렷한 일은 하지 않았지만 폐교였던 이곳에 활기와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은 그들이었지 않을까 싶다. 7년간 사람이 거의 들리지 않았던 이곳에서 사람 소리, 웃음소리가 들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곳이 살아나고 있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를 깨닫게 해주는, 우리 5인만으로는 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저녁에 했던 강강술래, 책 읽어주기, 연극 등도 그런 것을 위함이 아니었을까?

넷째 날 - 다시 올 때에는 버들눈에 빛나는 그대들이 있기를

점점 안 좋아지는 숙소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 자는 우리 일행을 내버려 두고 동한이와 함께 학도넷 일행이 가는 갯벌에 따라갔다. 이 선택은 내 일생일대 가장 후회할만한 일 Best 10 안에 드는 선택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오죽 할 게 없었으면 다시 버스로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을까.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이제 본격적인 도서관 작업에 들어갔다. 장서 정리, 정말 도서관다운 도서관 일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임에 약간 슬프기도 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자 장서 정리만 제대로 해도 온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이게 머리가 상당히 아프고 한 순간 한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토적성산처럼 하나하나 줄어드는 책들을 보며 성취감이 느껴졌기에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무 불평 없이 이 일을 해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은 죽지 않았고 도서관을 발전시켜나갈 여지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보내고 어느덧 떠나갈 시간. 점심을 먹고 선생님(엄마)을 제외한 우리 일행은 이제는 폐교에서 도서관이 된 버들눈도서관을 뒤로 한 채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 여행은 문학기행이라고 하기에도 도서관 만들기 여행이라 하기에도 제대로 된 여행은 아니었지만 이런 오지에서조차 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가르쳐주려는 사람, 그것을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서울시까지는 무리여도 내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관의 활성화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버들눈 도서관. 비록 오래 있지는 못 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만들기 위해 힘을 쓴 도서관. 언젠가 다시 올 때에는 그 버들눈에 빛나는 그대들이 웃으면서 있기를.

Lorin  16/06/19 01:12  삭제
I thank you humbly for shrniag your wisdom JJ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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