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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학교로 찾아가는 문학 강좌(05/07/12)
사무국
2005.10.12.
2914


지난 7월 12일 ‘책의 저자가 학교에 왔다’ 강연회 관계로 박상률 선생님과 함께 인천에 있는 청천중학교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청소년독서운동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해온 한국출판인회의, 그리고 학교 도서관의 내실화와 독서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운동을 펼치는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의 의지와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라고 한다. 강연자 선정을 학생과 학교가 바라는 저자로 최우선적으로 섭외한다고 하니까, 박상률 선생님은 말하자면 학생들의 낙점을 무르와 선택받은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선생님의 성장소설 『봄바람』이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90년대 초,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청소년 도서가 없던 시절, 사계절에서는 ‘1318문고’라고 하여 말 그대로 만 13세에서 18세의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국내외 소설들을 펴내기 시작했다. 박상률 선생님의 『봄바람』은 94년 처음 출간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이기도 한데, 농촌 정서를 지닌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가 자신의 성장기를 보냈던 전남 진도를 배경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학교 교과과정에서 다루면 좋을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청천중학교 담당 선생님인 임미자 선생님과 행사 준비로 여러번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학교가 재정적으로 넉넉하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학생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교생에게 책 한 권씩 사서 나눠주며 책을 읽히고, 독서클럽을 운영해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학교였다. ‘책의 저자가 학교에 왔다’ 관련해서도 단지 박상률 선생님의 강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여러 행사를 한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주는 상품도 선생님들이 사비를 털어 한다는 말에 상품은 우리가 준비하겠노라고 했다. 어쩐지 이번 행사는 단순한 강연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행사 당일, 박선생님의 강연은 3시로 잡혀 있었다. 우리는 열두시에 신림동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의 근황과 요즘 쓰고 계신 원고 이야기 등 모처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 학교로 출발. 부평역 근처에 있는 청천중학교는 운동장도 좁고, 시설도 썩 좋지 않은 것이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2시에 도착해 담당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이 이 행사 첫날이라 그런지 SBS뉴스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다(하루종일 찍어댔는데 뉴스에 방영되었는지는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확인을 못했다). 그러고는 행사가 시작될 소강당으로 이동. 그런데 말이 소강당이지 밖에서 보기엔 조금 삭막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갔더니 이건 웬걸. 안 쓰는 물건들은 한쪽에 잘 정리해두고, 행사가 진행될 공간은 정갈하게 청소를 해놓고, 정성껏 꾸민 행사 안내문과 독서퀴즈 준비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 청천중학교에서 만든 행사관련 포스터 -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이 꾸민 엽서가 잔뜩 붙어 있었는데, 『봄바람』 『마당을 나온 암탉』 『괭이부리말 아이들』 등 이 학교 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갖고 엽서를 만든 것이었다.

 - 박상률 선생님과 학도넷 이성희 선생님이 학생들이 꾸민 독서엽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우리는 준비해간 ‘1318문고’ 한질을 한쪽에 전시해두었다. 다양한 국내외 문학작품들로 꾸려진 34권의 이 책들은 이 행사가 끝나면 학교 도서관으로 보내져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계절에서 해마다 두번씩 펴내는 홍보지 ‘1318 북리뷰’와 사계절 도서목록을 2백여부 준비해 아이들이 마음껏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마침 이번 잡지엔 박상률 선생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어서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행사 시작 삼십분 전, 교복을 입은 남학생 여학생들이 ‘벌떼처럼’은 아니지만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전교생에게 의무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신청을 받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청자가 무려 이백명이 넘었단다. 그 아이들이 없는 시간 쪼개가며 엽서도 꾸미고, 독서퀴즈를 위한 공부모임도 가졌다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학교의 평소 책읽는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 우리 회사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십대들을 위한 본격문학선 1318문고'
한 질을 전시하고 행사가 끝난 후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었다. 허걱, 하고 나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도대체 몇시에 끝나는 걸까? 그냥 강연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네.

모든 학교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첫 번째 순서인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다행히 간단하게 끝나고, 바로 독서퀴즈가 진행되었다. 삼사명의 아이들이 한 팀을 이뤄 열여섯 팀을 만들고, 선생님이 내는 문제에 답을 적어 보여주는 식이다. 말하자면 ‘도전, 골든벨’ 식으로 진행되는 건데 이 열여섯 팀은 치열한 예선전을 통과하고 올라온 학생들이다. 문제는 상당히 난해했다. 박상률 선생님의 작품과 다른 책들에서 문제가 나왔는데, 나 역시 모두 읽어본 책임에도 불구하고 답을 생각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박상률 선생님 역시 저 앞에서 여유롭게 웃고 계시지만 자기 작품에 관한 문제의 답을 몰라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 OX문제에서부터 주관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 형태와 아이들의 엉뚱한 답에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독서퀴즈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끌었다.  

- '도전, 독서퀴즈' 진행 모습 -

그럼 이번엔 강연이겠지 했는데, 갑자기 남학생 두 명이 무대로 올라간다. 둘 다 꽃미남 스타일은 아니고, 대략 평범하고 굉장히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사춘기 소년들이다. 그런데 한 명은 피아노 앞에 앉고, 무대공포증이 있을 것 같은 남학생은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무대 가운데에 선다. 설마, 쟤네들이 뭘? 했는데, 정말 그 아이들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 바이올린 켜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내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체육관인지 창고인지 소강당인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이 공간이 갑자기 우아하고 격조 높은 콘서트홀로 바뀐다. 멋있다. 나는 갑자기 그들을 향해 오빠라고 소리치고 싶은 흥분을 애써 가라앉힌다.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그렇게 울려퍼지고, 십수년간 세파에 찌들었던 내 귀와 오장육부가 오랜만에 호사를 누린다. 바이올린 연주한 학생 이름이 ‘선율’이란다. 이름도 참 잘 어울리지. 아마 그 학생은 멋진 연주자가 될 것이다.

-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선사한 청천중학교 이선율 학생 -


연주회로 분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박상률 선생님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벌써 두시간째 아이들은 소강당에 앉아 있는 건데, 대견하게도 떠들지도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화장실에도 가지 않는다. 

박 선생님의 강연은 ‘꿈을 갖되 너무 크게 갖지는 말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순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이 당황한 듯하다. 우리는 늘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던가, 중학교 시절 보던 영문법 책 맨 앞장에 등장하는 문구도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아니었던가. 선생님은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고, 결정했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공부만 잘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며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쪽에 힘을 쏟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나비박사 석주명처럼 자기가 좋아서 십년만 그 일을 꾸준히 해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과 자기 주변의 사람, 사물, 자기 일상에 관해 기록해두면 좋다며, 일기를 쓸 것과 책을 많이 읽을 것을 권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절대 나쁜 사람 되지 않는다고, 책은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친구라고 하면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은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선생님답게 소박하면서도 진심으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연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어깨가 무거워진다. 정말 책 잘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 땅의 출판인들이여, 당신이 만든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아이들도 나만큼 열심히 강연을 들었는지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을 해댄다. 선생님이 쓰신 작품에 대해, 일상에 대해, 작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기 시작한다. 강연도 무사히 끝나자, 스르르 긴장이 풀린다.

- 박상률 선생님의 강연을 이백여 명의 학생들이 귀 기울여 열심히 듣고 있다 -

이젠 정말 끝인가 생각하니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아쉽다. 그런데 아니다. 다시 아이들 스무명이 차례로 무대로 올라섰다. 청천중학교의 자랑, 중창단의 노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남학생과 여학생 여럿이 곱고 맑은 음성으로 정성스레 노래를 한다. 코끝이 찡하다. 그냥 작가가 학교에 가서 강연만 하고 오는 일방적인 행사가 아니라,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하나의 작은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나로서는 오랜만에 순수하게 느껴보는 가슴 뭉클한 낯선 감정이었다.

- 멋진 노래공연을 선보인 청천중학교 중창단 아이들 -

4시간 동안 진행된 이 행사는 잔잔한 감동 속에 막을 내렸다. 끝으로 박상률 선생님은 1318문고 가운데 자신의 작품 『봄바람』『나는 아름답다』『밥이 끓는 시간』을 각각 다섯권씩 직접 싸인을 해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 학생들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로 나눠주는 박상률 선생님 -

이제 정말 끝이구나 했는데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길게 줄을 서서 박상률 선생님의 싸인을 받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 눈엔 선생님이 배용준으로 보인다. 손이 아플 만도 한데 일일이 학생들과 눈을 맞춰가며 이름을 물어보며 정성껏 싸인을 해주는 선생님과 수줍은 듯 쑥스러운 듯 조심스레 자기 이름을 말하고, 싸인된 책을 받아들고 좋아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이 순간이 기억될 책이나 공책을 펴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 박상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일일이 싸인을 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늘 이 강연을 들은 학생들 가운데는 미래의 작가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남몰래 작가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처럼 나를 위한 기록으로서 새로이 일기를 쓰려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며, 책을 좀더 많이 읽고자 애쓰는 학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찌 됐든 나는 감히 바란다. 이 행사의 기본 취지가 학생들의 독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면 좋다. 일단 그것을 위해서라도 이 행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 작가와 학생들이 소통을 하고,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도 계속 이어져야 하리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교와 학생들이 이런 기회를 통해 자기들만의 문화축제를 마련하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깊이 알게 된다면, 그래서 나중에 그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값지게 추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을 위해서라도 이 행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쭈욱~

김태희(사계절출판사 아동청소년문학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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